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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골든리트리버역사
  2.  골든리트리버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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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retriever01_img02.jpg리트리버는 사냥이 한창이던 1800 년대 영국에서 사랑 받았던 종이다.
골든 종은 영특한 사냥 종으로 다재 다능하여 높이 뛰어 오르기나 물새 사냥에도 아주 능숙했다. 1800년 대는 품종교배가 흔했기 때문에 골든 리트리버를 본격적으로 번식 시키기 이전에 이미 여러 품종의 리트리버가 있었다 이러한 리트리버는 외모상 골든 리트리버와 매우 흡사 했다.

트위드 마우스(Tweedmonuth) 경으로 잘 알려진 더들리 메이저리뱅스(Dudley Majoribanks)경은 18세기 중후반, 스코틀랜드에서 사육장을 운영한 덕에 순수한 골든 리트리버 종을 교배 할 수 있었다. 오늘날의 모든 골든 종의 기원은 튀위드 마우스 경의 사육장 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1866 년 트위드 마우스 경은 흔히 '나우스(Nous)' 로 알려진 노란 강아지 암컷인 "물결 모양 털의 리트리버 (Wavy Coahed Retriever)를 얻었다.

노란색은 열성 유전자 이지만 가끔씩 자견 중에 노란색 강아지가 나오기도 한다. 물결 모양의 털의 나우스 는 현대의 골든 리트리버와 아주 비슷하다.

트위드 마우스 경이 첫 교배하여 얻은 다른 종은 '벨레(Belle)' 라는 이름의 '트위드 워터 스페니얼(Tweed Water Spaniel) 암컷이다. 워터 스페니엘 은 뛰어난 수영실력과 우수한 지능과 온순하기로 유명해서 특히 사냥견으로 인기가 높았다. 크기는 보통이고 털 색깔은 어두운 노랑과 갈색 사이이며 털이 거의 없고 곱슬에 밀려 올라간다. 모든 리트리버 종은 같은 유전자에서 출발했다.

리트리버 종의 조상은 크게 [골든 리트리버]와 [트위드 워터 스페니엘]로 나누어 진다.
성질이 트위드 워터 스페니얼 과 매우 비슷한 골든 트리버는 아주 희귀한 종에 속한다.

트위드 마우스 경은 1868년 나우스와 벨레를 교배한 결과 얻은 네마리의 노란 강아지에게 [아다] [크로커스] [코우슬립] [프림로즈]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그중에서 코우슬립만을 교배 시켰다. 코우슬립을 트위드 워터 스페니엘 종과 교배시켜 샘슨(Sampson)울 얻었다.
두번째 교배가 성사 되자 냄새 맡는 능력이 향상 됐고 털 쌕깔도 일정해 졌다.

1884년 두번째 노란색 마우스가 태어났다.
이 개의 아비는 샘슨과 코우슬립이 낳은 수컷의 잭 이었고 어미는 검은 털을 갖은 조이(Zoe) 였다. 조인의 어미는 트위드와 코우슬립니 낳은 탑시(Topsy) 였다. 트위드 마우스 경의 번식 계보의 마지막 자손은 두번째 나우스와 퀴니(Queenie)의 자견이다. 퀴니는 검은 털의 조이와 두번째 나우스와 한배에서 나온 암컷 강아지이다.

이결과 두마리의 노란 강아지 프림(Prim)과 로즈(Rose)가 태어났다. 이 두마리가 트위드 마우스 경의 순종 [골든 리트리버]의 오늘날의 자손이다. 1904 년 영국에 처음으로 등록한 골든 리트리버 종은 털의 모양에 따라 분류 되였다. 1913 년 이후에는 색깔로 구분 하였으며 골든 혹은 노란색 리트리버로 알려지기 시작 했다.

골든 리트리버라는 이름은 1920년에 와서야 쓰이기 시작했다 . 골든 종은 19세기 초에 처음 사냥대회에 출전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와 동시에 자신의 개를 conformation (동일견종,일치화) 쇼에 등록 시키려는 애호가 들이 나타났다.

하코드(Horcourt) 경은 쿨햄(Culham) 이라는 성을 개에게 붙혀준 초기 브리더 이다. 그의 개는 프림과 로즈의 자손인 쿨햄 브래스(Brass)와쿨햄 로사(Rossa) 이다.

1913년에 태어난 브래스와 로사의 손자인 놀랜비 캠파이어 ( Noranby Campfire)는 사냥 대회에서 우승한 첫번째 챔피언 골든 리트리버 이다. 찰스위스(Mrs.Charlesworth) 부인은 이개의 소유주가 되어 1950 년 까지 놀랜비 캠파이어를 번식 시켰다. 그부인의 개는 놀랜비 케널(Noranby Kennel) 에 이름으로 정식 등록 되었다.

세계 대전이 일어나자 개의 교배는 침채기를 맞았다. 이시기에 교배는 정지 상태 였고, 모든 개의 활동도 정지 됐다. 세계 제 2차 대전중에는 개의 안전을 위하여 개를 미국으로 보내는 브리더가 늘어 났다. 전쟁 발발로 교배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지자 수요의 충족을 위하여 골든 리트리버와 유사한 모든 종이 번식 되였다.

그 결과 1930대에는 옅은 색의 털을 가진 개가 나타나기 시작 했다. (그전까지 대부분의 골든종은 짙은 황금색 임) 결과적으로 골든 리트리버의 판별기준은 밝은 또는 짙은 황금색으로 규정 하기로 이르렀으며 후에 골든리트리버 종의 생김새에 대한 세계적 기준으로 발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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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retriever01_img03.jpg골든 리트리버가 처음 미국으로 건너간 것은 1890 년대 초 이다. 트위드 마우스 경의 아들, 혼 아키 메이저리 뱅스( Hon.Archie majoribanks)가 텍사스에 있는 자신의 목장에서 아버지기 교배한 개의 자손과 찍은 사진도 남아 있다. 그 개는 하코드(Lord Harcourt) 경의 쿨햄 브래스 의 손녀 뻘이다. 그외에 19 세기 초에 캐나다와 미국에 골든 리트리버에 대한 기록은 있지만 등록되지 않은 개다.

1920 년 대에 와서야 미국에서 품종 개량이 공식화 되었다. 이때는 미국이 영국 이라면 스포츠 문화이든 개든 무었이든지 받아 들였던 시기이다. 미국에서 내노라 하는 저명인사들은 래브라도 리트리버 ( Labrador Retriever)와 골든 리트리버를 수입했다.

롱 아일랜드의 [이스트 험프셔]에 사는 로버트 아플레튼( Robert Appleton)은 출판사의 경영권을 내놓은뒤 1925년 미국인 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컨넬 클럽 (American Kennel Club)에 롬베르달 블론딘 (Lomberdale Blondin) 이라는 3년생의 수컷 골든 리트리버를 등록 했다. 이 두마리가 1925 년 10월에 첨으로 등록된 골든 리트리버 이다.

그러나 골든 리트리버는 1932 년 까지 독립된 종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래브라도 리트리버와 함께 개 전시회에서 모습을 보인적이 없다. 그 시기엔 산발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던 개 종류는 많았지만, 골든 리트리버가 미국에서 번식되지 않아 교배 종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골든 리트리버를 교배한 사람은 뉴욕의 찰스 라지 (Charles Large ) 박사 였다. 1931년 그는 영국에서 다양한 개를 수입해 교배 프로그램을 완성 시켰다. 그는 컨넬 이름을 훼르노바 ( Fernove) 라 이름 짓고 국민 사육장 클럽의 창단을 위해 활동 했다. 그러나 1933년 죽을때 까지 노력을 결실은 보지 못했다. 그의 개를 상속 받은 조카 마이클 클레멘스 ( Michel Clemens) 는 커넬 이름을 프란텔(Frantelle)로 바꾸었다.

이 시기에는 부호들만이 골든리트리버를 소유할수 있었다. 부유층은 순전히 골든 리트리버의 호기심과 사냥견으로서의 호평 때문에 골든 리트리버를 애완 견으로 키우는 일반 가정은 거의 보기 힘들었 으며 대개 대형커넬에서 전문 브리더에 의해 사육 되었다.

골든리트리버가 1931년 롱 아일랜드에서 열린 최초의 AKC 공인 리트리버 전시회에 참가한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이다. 영국에서 수입된 이 암컷은 퍼피 스테이크 (Puppy Stake)에 참가한 두마리 중에 한마리이며 [Ch.lady Burns] 가 되었다.

벤쿠버에 사는 사무엘 마고핀 ( Col.Samuel Magoffin )이 1932 년 영국에서 스피드웰 프로트 ( Speedwell Pluto)를 수입 하면서 골든 리트리버 교배가 활기를 띄기 시작 했다. 스피드웰 플로트 는 미국과 캐나다에서 챔피언이 되였으며 리본 쇼에서 우승한 최초의 골든 리트리버이다.
플로트는 전시용 개가 아니라 태평양 서북부의 암석 투성이의 해안에서 사냥 되어온 개이다. 비록 미국에서만 강아지를 낳고 있었지만 아메리카 토종 개로 여겨 지고 있다.

마고핀은 벤쿠버에 롹하벤 사육장과 콜로라도 주의 잉글우드에 길녹키 (Gilnockie) 라는 사육장을 운영했다. 따라서 그가 교배시킨 종은 플로트 외에도 여러 종이 있다. 미네소타와 위스콘신 주에 사는 그의 친척들이 골든 리트리버를 수입 하기도 했다.
미네소타 주의 위오나 에 사는 마고핀의 처남인 랠프 볼트(Ralph Boalt) 는 영국에서 암컷 한마리를 수입한것이 스틸로빈 사육장의 시초였다.
스틸로빈 사육장은 마고핀의 콜로라도 사육장에서 교배시킨 길녹키 코켓 으로 가장 유명하다. 잡종 교배로 태어난 길녹키 코켓은 2관왕과 품평회에서 우승을 차지 했다.

1940 년대말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교배종이며 큰 사랑을 받았던 개는 FC 스틸로빈 슈퍼 스피드, CH 스틸로빈 니토 익스프레스, FC 스틸로빈 캐서린, 듀얼 CH 스틸로빈 립스 프라이드, CH 스틸로빈 셔 샷 이다. 그와 동시에 랲르의 형인 벤 발토 (Ben Boalt) 는 위스콘신 주 경계선 밖에 비버 테일 ( Bearvertail) 사육장을 세우구 후에 이름을 거너맨 으로 변경 했다. 그가 사육한 개는 롹헤븐(Rockhaven) 혈통 이다.

aboutretriever01_img05.jpg미네소타의 또 다른 골든 리트리버 애호가는 헨리 크리스티안 (Henery Christrian)으로 1933 년 영국에서 암컷 스피릿 오브 알드그로스(Sprite of Aldgrove) 와 캐나다에서 수컷 롹헤븐 로리(Rockhaven Rory) 를 수입하여 골드우드 (Gold Wood) 사육장을 세웠다.
두마리 모두 우승을 차지 했고 선수로 활동했다. 로리는 명예의 전당 전시관에 초기 멤버 였으며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이 교배된 개 중의 하나이다.

골드우드 사육장은 [Fc 골드우드 턱]과 경쟁한 쟁쟁한 라이벌인 [골드우드 마이클 UD] 와 [골드우드 토비 UD] 를 탄생 시켰다. 토비는 만능상을 거머쥔 최초의 골든 리트리버 이다.

미조리 주의 세인트 루이스는 골든 리트리버를 사육한 곳으로 말론 웰레스(Mahlon Wallace,Jr) 부부와 존 웰레스 (John K.Wallace) 가 1933년 영국에서 골든 리트리버를 수입 하기 시작 했다. 그들이 수입한 "스피드 웰류벤" 과 "CH.스피디엘 탱고" 를 교배한 결과 "FC 립" 이 태어났다.
1939 년 FC 립 은 우승을 차지한 최초의 골든 리트리버로서 오늘날까지도 오픈 경기 에서 거둔 점수는 최정상을 차지 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출전 당시 대부분의 프로들 중에서 아마추어인 "FC 립" 이 우승했다는 사실이다.

존 웰레스는 "화이트 브리지" 라는 사육장을 운영했다. 유럽에 세계 제2차 대전이 일어니자, 영국의 엘름 사육장의 개들이 웰레스의 사육장으로 옮겨왔다.
이들 개 중에는 미국 시합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거나 성공적인 교배 종들이 있었다. 중요한 수입견은 영국과 미국혼혈 "CH 빙고 " 이다. 빙고는 훌륭한 선수일뿐 아니라 우승도 거두었다.
영국에서 수입된 영국산 "CH 마린 오브 울리 " 도 골든 리트리버의 번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개는 캘리포니아의 산타 바바라에 위치한 "블루 리더" 사육장에서 사육 됐으며, 캘리포니아에 들어온 첫 골든 리트리버 중에 하나이다.
마린은 "롹헤븐 벤 볼트" 와 "롹 헤븐 쥬디"를 낳았고 두마리 모두 미네소타로 보내 졌는데 "벤 볼트"는 "랄프 볼트" 가 운영하는 사육장에 맡겨 졌다.

"벤 볼트"는 1930년대 말에서 1940 년대 초 까지 교미 대상자로 가장 인기가 많았다.
"쥬디"는 미네소타의 "우던드 사육장"의 초기 엄컷 중에 하나로 쥬디가 낳은 강아지들은 사냥 실력이 뛰어나 교미 대상자로 또한 인기가 높았다. "우던드 사육장"은 [NFC 마이다스 왕]을 사육 하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 시기에 "미드 웨스트" 에서의 골든 리트리버의 인기는 실로 놀라운 것 이였다. 사육에 열기도 높아져 직업으로서의 사냥견 수도 급증 했다.
1940 년대 중반을 지나는 동안 [AKC] 에 등록된 골든 리트리버의 절반이 미네소타주의 남동부 출신 이였다.

"미드 웨스트" 에 사는 골든 리트리버 애호가의 노력 덕분에 1939 년 [미국 골든 리트리버 클럽]= THe Golden Retriever Club of America가 창단 되였다. 초대 회장은 존 왈레스 (John Wallace) 였다. 그후, 클럽은 오랜시간에 걸쳐 골든 리트리버의 교배기준,특성,취지 등을 확고히 하는데 힘썼다.

2차 대전이 끝나자 폼종 개량이 활성화 되어 골든 리트리버의 인기는 어디에서든 쉽게 볼수 있게 되었다. 생활의 여유가 생긴 미국인들은 가정에 애완견을 두기 시작 했지만,골든 리트리버는 여전히 애완견으로서는 일반화 되지 않았다. 주로 품평회나 사냥견으로 인기가 높았다.

뛰어난 품종의 골든 리트리버와 수년동안 골든 리트리버를 번식시키고, 품종개량에 이바지한 브리더들을 소개 하기엔 지면이 부족 하지만 사냥실력에서 가장 독보적인 존재는 AFC Ch, 로렐라이의 골든 롹버텀 UD(로렐라이의 골든 타냐의 자손인 로렐라이의 '골든립") 이다.
"골든 롹버텀" 의 주인은 "레인하드 비스코트(Reinhard Bischoff) 였다. 레인하드 비스코트 는 골든 롹버텀 외에도 아마추어 락키(Rocky)를 기르고 있었는데 락키는 3년생이였슴에도 불구하고 영예의 전당 품평회 멤버이자 품평회 우승자로 뛰어난 견종으로 알려져 있다.

락키의 아들 "Ch 리틀 죠 오브 티카토" 는 아비와 떨어져 "조지 플렌" 여사에게 보내졌다.
"조" 는 그룹 테스트와 현장 테스트 훈련을 받았고 여러차레 품평회와 시합에서 우승하여 1950년대의 자장 중요한 견종이 되였다.
토치(Torch) 로 알려진 "조지 플린" 여사는 브리더로 지낸 10 년동안 그 누구 보다 많은 골든 리트리버가 챔피온을 사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의 마지막 FC 는 그녀가 죽은지 1년 뒤인 1996 년에 챔피언이 되였다. 플린여사는 골든 리트리버의 번식이 60년간 침체 되였던 시기에 우수한 골든 리트리버를 품종 개량 하는데 힘썼다.
1970년대 초 플린여사와 로버트 새들러 여사는 FC/AFC "보니 브룩스 엘머"와 "티카토 치카소" 를 교잡하는 일을 맡았다.
그 결과 세마리의 챔피언과 품평회에서 많은 챔피언들을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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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retriever01_img06.jpg미국의 사육가들은 영국에서 계속 골든 리트리버를 수입해 왔지만 외모상으로는 거의 변화가 없었으나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에 들어서야 서서히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털 색상이 더 밝아져 개 품평회에 밝은 색의 골든 리트리버가 출전할 정도로 일반화 되었다.
또한 수입견은 초기에 영국에서 수입하여 교잡시킨 어두운 색의 미국 골든 리트리버와 모든 면에서 달랐다.
이와같은 시기에 'Ch. 미스터 몬스 선셋 CD,TD,WC'('새미'라고 알려짐)와 'Am./Can./Bda.Ch. 커밍스 골드 러시 찰리'는 골든 리트리버 품평회의 챔피언으로 새로운 골든 리트리버의 표준을 마련했다.
'새미'는 챔피언 기록을 보유한 우수한 사냥견이다.
'찰리'는 골든 리트리버 품평회에서 사상 최고의 점수를 획득하며 38회의 챔피언이 되었다.
또한 1974년 조렵견 품평회에서 최고의 골든 리트리버라는 영예를 차지하기도 했다.

품종 개량에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챨리의 우승 기록은 1993년 'Am./Can.Ch. 아스텔링스 와일드 블루 욘더'에 의해 깨졌다.

1970년대에 영국에서 수입된 개 중에서 사냥견으로서의 골든리트리버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놓은 개가 한 마리 있다.
바바라 하워드 는 생후 1년 생인 홀웨이 바티를 구입한 뒤 몇 달 동안 공인 시험장에서 뛰게했다.
홀웨이 바티가 '더비 스테이크'에서 우승하자 사람들은 이 잽싸도 작은 개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바티는 주인의 혹독한 훈련의 결과 아마추어 챔피언전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바티는 그의 우성 형질을 계승하고자 교배 상대로 애용되었다. 바티는 사냥견으로 9차례나 우승했고 명령 이행 테스트(obedience trial)에서도 다승을 거두었으며 우수한 자식을 가장 많이 생산해낸 골든 리트리버였다.
'바티'의 아들 중에는 'NAFC/FC 톱 클래스 코튼'(Ch. 선스트림 집시 오브 탑브래스 혈통)도 있다. '코튼'은 '전국 더비 리스트'에 올랐으며 '더블해더 위너'에서 274점이라는 최고 기록을 갱신하면서 골든 리트리버로서는 처음으로 전국아마추어 리트리버 챔피언쉽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바티 이전에는 5차례 이상 챔피언이 된 골든 리트리버는 없었다. 바티는 63마리의 우수한 자손을 남겼으며 8차례나 챔피언에 올랐다.
또한 많은 골든리트리버에게 나타나지 않거나 열성 형질이 된 얼룩 무늬와 스타일과 훈련 능력까지 겸비했다.

1970 년대에 들어 골든리트리버의 탁월한 명령이행 능력이 드러나기 시작 했다.
1977년 7월에 열린 명령이행 테스트에서 챔페언으로 선정된 3마리의 견종이 모두 골든리트리버 였다.
그후로 골든리트리버는 모든 견종을 대상으로 하는 대회에서 우승을 독차지 했다. 유정 형질 면에서 봤을때 우수한 명령 이행 능력이라는 공통인자는 존재 하지 않는다. 단지 건실함과 자발적인 태도에 차이가 있을뿐이다.

앞서 언급 했듯이 1970 년 대 까지 골든 리트리버는 대중에게 잘 알려진 견종은 아니였다. 덕분에 고유혈통을 잘 지켜 왔으며, 종종 매우 대중적인 아일랜드계 세터 ( Irish Setter ) 와 혼동될 정도 였다.

1974 년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암컷 골든 리트리버를 구입한것이 계기가 되어 미국 국민에게 골든 리트리버의 존재가 알려졌다.
백악관에서 맘대로 돌아 다니고 강아지를 낳음으로서 국가적으로 인정을 받기에 이르렀다.
골든리트리버의 존재가 알려지자 그 인기가 급상승 하였고, 가장많이 등록하는 개 인기순위 5위안에 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그후 20년 동안 계속 되였다.
즉, 골든리트리버는 일시적 유행을 탄것이 아니라 개를 키우는 사람들에게 꾸준히 사랑을 받아왔음을 의미한다.

사냥견이자 애완견으로서의 개를 품종개량한 초기 역사와 취지,목적을 올바르게 인식하는것은 매우 중요하다.
품종개량의 공통된 목적은 개를 사육하는 목적에 따라 그에 맞는 종으로 나누어 교잡 시킨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런 현상은 이미 어느 정도 까지는 진행이 되어왔다. 골든리트리버는 개의 능력을 평가하는 여러대회에서 우승하도록 교육을 받아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다양한 활동에서 우수한 상적을 거둔 리트리버는 모두 한배에서 나왔다.

원래 사냥견이였던 개들을 품평회에 참가할수 있었고, 품평회에서 챔피언이 된개의 사냥능력 또한 또한 우수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품종개량은 거의 모두 이중적 목적을 띄고 있었다.

오늘날엔 사냥견이 더이상 골든리트리버를 닮지 않았다는 의견도 나오지만 아직 단정 하기는 이르다.
품평회에서 출전한 개의 털과 골격이 작업견과 일치 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람들도 많다.
지금도 많은 사육자들이 견종 표준에 일치하고 다양항 목적으로 이용할수 있는 골든 리트리버를 얻기위해 힘쓰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골든 리트리버를 품종 개량하는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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